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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들러의 심리학
· 개인심리학은 심층심리학의 대부이자 초기 역동적 심리치료 발전에 크게 기여한 아들러에 의해 창시된 심리삼당학
· 아들러는 9년간 비엔나 정신분석학회에서 프로이드와 함께 정신분석을 연구하였으나 프로이드와의 입장차이로 결별 자신만의 이론을 발전
· 아들러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자신의 이론을 개인의 분리불가능성(indivisibility), 즉 나눌 수 없는 전인이라는 의미를 넣어 ‘개인심리학(Individual psychology)’ 라고 명명
·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인간관을 가진 아들러는 집단상담, 가족상담, 부부상담, 부모교육 등 상담 분야의 확장은 물론이고 실존치료, 인본주의 치료, 게슈탈트치료, 인지치료, 현실치료, 교류분석, 해결중심치료, 체계적 치료, 구성주의 치료의 선구자로 인정받음.
· 단기치료, 통합치료, 다중심리치료 등 치료기법의 발전에도 큰 영향
1. 주요학자
1) 알프레드 아들러(Alfred Adler, 오스트리아 펜칭, 1870~1937)
▶ 아들러는 어린 시절 구루병과 폐련 등을 앓았고, 건강했던 형 지그문트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자람. 동생의 탄생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기고, 아들러는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아버지와 친밀하게 지냄. 이런 경험은 프로이드의 오디이푸스 콤플렉스(Oedipus complex)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함.
▶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아들러는 의학을 전공하고 1898년 안과의사로 첫 개업을 함.
: 그때 그는 눈이 나쁠수록 탐욕스러운 독서광이 되기를 원한다는 놀라운 사실에 주목했고,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자신의 열등성을 극복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가운데 인간의 발전은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발견.
▶ 1902년 프로이드의 초대를 받아 토론 그룹에 참여하고 1910년에는 아들러가 의장이 된 비엔나 정신분석학회로 발전.
▶ 자신의 이론에 대한 엄격한 충성과 획일화에 대한 프로이드의 압력으로 인해 아들러는 1년 후인 1911년 비엔나 정신분석학회를 탈퇴.
▶ 1912년 ‘개인심리학’의 개념을 가지고 ‘개인심리학회(Society for Individual Psychology)를 탄생.
▶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 정부의 부탁으로 신경증 아동들과 그들 부모들이 상담 받을 수 있는 아동상담센터 설립
: 정신치료센터의 선구자적 역할, 부모교육, 부모상담 프로그램, 교사교육, 집단상담의 새로운 장을 개척
▶ 의사, 교사, 부모와 같은 많은 청중 앞에서 집단치료와 가족치료를 실시함으로써 내담자와 공식적으로 일한 최초의 사람.
: 다른 전문가들이 상담 상호과정을 직접 관찰하여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모의실험상황(demonstration)을 사용.
▶ 아들러의 사망 이후, 그의 연구에 대한 관심이 점점 퇴조되었으며, 아들러의 제자는 나치정권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대륙과 다른 지방으로 흩어짐.
: 미국에서는 프로이드 심리학과 대립되는 아들러의 사상에 대해 매우 심한 거부 반응 보임.
▶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인심리학은 다시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, 루이스, 라이너, 스펄버, 특히 드라이커스와 그의 미국 동료 및 제자들에 의해 개인심리학은 다시 조명받기 시작하고 엄청난 발전을 이룸.
2) 루돌프 드라이커스(Rudolf Drekurs, 오스트리아 비엔나, 1897~1972)
▶ 아들러의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애제자로 아들러의 이론을 미국으로 가져가서 발전시킨 핵심인물.
▶ 가장 큰 공헌은 아들러의 이론을 실제 임상에 적용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확장
- 문제아동이나 청소년의 문제행동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게 이론을 정립하고, 이들을 처벌 없이 협력적으로 문제행동을 개선시킬 수 있는 실용적 방법으로 개발하였다. - 인간의 비행을 그가 속한 사회집단에 대한 소속감의 결여로 인한 것으로 봄. 이로 인해 아동은 잘못된 관심(undue attention), 힘(power), 복수(revange), 회피(avoidance, 부적절함[inadequacy]) 등의 네 가지 ‘잘못된 목표(mistaken goals)’를 갖고 행위. - 전반적 목표는 학생들이 상벌과 관계없이 자신들이 교실환경에서 가치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합리적인 협력을 배워 나가도록 하는 것. - 첫 번째 사회적 환경을 가족으로 봄 : 교육이 일어나는 장소, 가정내 인간관계를 중시, 학교는 가족의 학대 개념 - 민주적 가족관계를 강조하면서 가족구성원들 간에 서로 밀접하면서도 서로에게 예의를 지키고, 부모가 가족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, 가족들이 구성원 간에 상호 자극을 줄 수 있는 선의의 경쟁자로서의 역할을 할 것과 협동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을 것을 제시 |
▶ 개인심리학을 감옥, 학교, 보건센터 등에서 강의하면서 아들러 이론을 실제의 장으로 확장
▶ 아들러와 마찬가지로 격려(encouragement)가 행동 및 인간관계 개선에 핵심적인 요소라고 믿음.
▶ 1952년 알프레드 아들러 연구소(Alfred Adler Institute)를 시카고에 창설
: 아들러식 교육 프로그램을 미국 및 캐나다 등지에 전파
▶ 아들러 상담센터(Adlerian Child Guidance Center)를 미국에 설립
: 상담사들을 훈련
▶ 전 세계적으로 아들러-드라이커스 가족센터(Adlerian-Dreikursian Family Centers)의 지부 설립
▶ 아들러의 이론을 실제의 장으로 확장시켜 개인심리학의 발전은 물론이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르기까지 사회에 수많은 공헌을 함.
3) 하인즈 루드비히 안스바허(Heinz Ludwig Ansbacher, 독일 프랑크푸르트, 1904~2006)
▶ 뉴욕에서 아들러의 강의를 들은 후 아들러에게 개인상담을 받고, 아들러의 세미나에도 참여하면서 심리학에 관심을 가짐.
▶ 아들러 심리학에 영향을 받은 개인심리학자인 로웨나 리핀(Rowena Ripin)과 결혼, 아내와 함께 개인심리학의 기본도서인 『아들러의 개인심리학: 아들러 저서 선집(The individual psychology of Alfred Adler: A systematic presentation in selections from his writings)』 집필
▶ 16년간 개인심리학 저널 편집을 맡음.
: 이 저널을 통해 전체주의적이고, 현상적이며, 목적론적이고, 장이론적이며, 사회적 지향성을 지닌 심리학 및 그 관련분야들이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전통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된 점에서 크게 인정 받음.
▶ 안스바허 부부는 아들러학파 학자로써 아들러학파의 사상을 따르던 초기 추종자들을 이끄는 리더로서 혼신의 힘을 다함.
▶ 북미 아들러심리학회(North American Society of Adlerian Psycology)의 회장으로 봉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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